2016년 10월 1일 토요일

만들어진 한국사

평소에 저자인 초록불의 블로그 글을 자주 읽고 있고, 이 책을 출간했다는 것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읽지 못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서 이번에 보게 되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서 좀 실망했다.

처음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던 게 환단고기나 유사역사학에 대해서 일단 독자들이 대충은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블로그 방문객이라면 몰라도 책으로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애초에 이런 걸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고려해주는게 좋았을 텐데.
예를 들어서, 월드컵으로 붉은악마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치우천왕은 그냥 우리 민족의 시조라고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환단고기가 뭔지, 대륙조선이 뭔지, 유사역사가들이 어떤 주장을 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 다음에 반박으로 들어가는게 이해하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2부에서 한국사 미스터리를 소개할 때도 최소한 그 미스터리 원문은 처음에 실어놓고 반박을 하는게 알기 쉬웠을 것 같다.

본문 여기저기에서 출처로 인터넷 사이트 주소(주로 저자의 블로그 주소)를 올려놓은 것도 단점이다. 아직까지는 살아있지만 이글루 유저들이면 이글루가 언제 갑자기 망할지도 몰라서 불안해한다는 건 상식 아니었던가ㄷㄷㄷ

전체적으로 글이 책으로 정리가 되었다기보다 기존에 블로그에 올리던 글을 한데 모아서 좀 다듬었다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한권의 책에 맞게 완결성을 가지고 집필했다면 더 읽기 좋지 않았을까.
물론 그러기에는 책에 실어야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점은 이해한다. 책의 글자 크기도 작고 페이지수도 450페이지 정도는 되서 실려있는 정보는 꽤 많다. 후기에 의하면 이것도 많이 걸러낸 것이라 하니 저자가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내용을 줄이더라도, 결과적으로 개론 수준의 설명밖에 안되는 수박 겉핥기처럼 되더라도 일단 유사역사학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를 시키려면 그게 최선이 아닐까.


2016년 9월 18일 일요일

그들이 본 임진왜란

임진왜란 시기에 대해서 일본의 문헌을 토대로 당시 일본인의 인식을 다룬 책이다.

그동안 조선쪽 입장만 알고 있어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임진왜란은 꽤 많이 신선했다.

같은 사실인데도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인식의 차이가 이 정도나 나다니 그동안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가토 기요마사가 이 정도로 영웅시될 정도라니...

어떤게 보면 임진왜란은 가토 기요마사의 영웅담처럼 보일 지경이다.

가등청정 하면 한국에서는 가장 포악했던 일본 장수였는데...

이런 일본의 임진왜란 인식이 서구에 처음 흘러들어갔고, 그 결과로 지금 국제적인 동아시아 인식을 결정짓는 큰 토대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선점효과가 역시 매우 크다.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걸 제대로 외부로 알리는 게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9월 4일 일요일

마녀재판, 드레퓌스 재판

1. 마녀재판(p164~166)

(중략)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녀사냥 제도의 주된 결과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영주나 교황의 희생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단지 마녀나 악마의 희생물이라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신네 암소가 낙태했다지? 당신네 밭의 귀리는 잘 크지 않는다면서? 당신네 포도가 시어졌다면서? 당신의 자식이 죽었다면서?
 당신네 울타리를 부수고 빚에 또달리게 하고 당신의 농토를 탐내는 자는 바로 당신의 이웃 … 마녀로 변한 당신의 이웃이다. … 교회와 국가는 가공할 적들을 격퇴하자는 힘찬 캠페인을 시작했다. … 결국 마녀재판이 지닌 실제적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교회로부터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들에게 전가시켰다는 데에 있다. 고통당하고 소외되고 헐벗은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나 탐욕스러운 귀족을 저주하는 대신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중략)
결국 가난하고 무력한 부녀자들에 불과했던 마녀들은 교회와 국가, 성직자와 귀족들의 정치적 무능과 도덕적 타락에 대해 전가된 책임을 지고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성직자와 귀족들은 오히려 '간파해내기 힘든 적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해 주는 위대한 보호자'로 변신하였다. 어리석은 농민들은 위정자의 실정, 풍수해와 경제적인 궁핍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이웃에게 전가하는 데 급급한 꼴이었다. 위정자와 법집행자에 의해 가공된 마녀의 존재는 대중에게 마녀에 대한 공포와 증오감을 심어주었고, 나아가 마녀의 고발과 처형에 앞장서도록 만들었다. 이로써 마녀소동은 '빈자와 무산자들의 가동능력을 박탈하고, 서로간의 사회적 거리감을 조장시키고, 서로 의심하게 하고, 이웃끼리 싸우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불신을 고조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2. 클레망소, 에밀 졸라를 기리며(p240)
'가장 강력한 제왕에 반항하며 그에게 경배할 것을 거부할 만큼 강한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다수에 저항하고 오도된 대중에 홀로 맞선 사람은 매우 드물다.'




얼마전에 있었던,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메갈 티셔츠와 김자연 성우 사건에 대해서.

사건 진행을 보면서 드레퓌스 사건이 절로 떠올랐다. 에밀 졸라처럼 '나는 고발한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지.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은 것도 똑같지만.
드레퓌스 사건처럼 이 사건도 10년이 지나야 재평가를 받을 수 있으려나?



2016년 5월 14일 토요일

교수대 위의 까치

저자인 진중권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고전회화 작품들 12점에 대해서 그림에 대한 해설과 해석들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현대미술은 대중과 유리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고전미술 그림들은 일반인도 보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고 대중과 괴리되어 그들만의 세계에 빠진다고.
하지만 우리는 과연 고전미술'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한번 보고 그 그림을 전부 이해했다고 착각하지만, 진중권은 그림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디테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풍부한 정보를 끌어낸다.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꼭 맞다.

어쩌면 '고전 미술은 일반인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중과 가깝다'는 말이 고전 미술에 대한 부당한 비하가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필요한 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된 이해는 절대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내 감상이 지식이 없는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중권도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눠서 정서적 감동, 지각적 쾌감, 지성적 자극, 영성의 울림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 책은 그 중에서 작품의 지성적인 자극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지적 유희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줄 모른다고 깔보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겠지.

나와 다른 감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무조건 폄하하고 다른 이의 감상까지 폄하하는 이는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현대미술 같은 경우라던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