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2일 일요일

밴버드의 어리석음

이 책은 실패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때는 성공했거나 성공할 뻔 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잊혀져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실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거나, 외부 상황이 안 좋았거나, 그저 운이 좋지 않았거나.

지금에 비춰보면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늘어놓았고, 그 때문에 실패하고 조롱받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웃음보다는 먼저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것은, 작가의 애정이 담긴 글의 어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에 비춰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실패자들에 대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거꾸로, 어째서 우린 이런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까?
승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열명중 하나, 백명중 하나만이 성공하고 후세까지 기억되는 승자라고 한다면, 그 한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실패자가 될 것이다.
백년 뒤에는 분명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잊혀지고 소수의 이름만이 전해지고 기억되겠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의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열정을 바쳐서 삶을 살아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간에 한번쯤 들여다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2015년 3월 8일 일요일

548일 남장 체험

저자 말대로 이 책은 일종의 기행문이다. 잠입취재한 르포르타주라기에는 글쓴이의 주관이 너무 깊게 배어있다. 남자들의 세계를 파고들었다고 하기에는 실제 체험한 부분이 협소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관이 배어있다고 객관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감정이 깊게 배어있기 때문에야말로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이 느낀 심리에 대해서 솔직하게 풀어놓고 있다.
저자는 레즈비언이고, 평소에는 '남자같은 여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보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기에 더 적합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저자도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에는 정체성 충돌로 인한 신경쇠약 때문에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기행문이라고 했지만 동물원의 사파리처럼 창문 너머로 관찰한 것은 아니고, 저자 자신도 그런 위험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나니 이 책에서 드러나는 남성의 심리와 저자의 깨달음이 나에게도 좀 더 깊숙히 와닿았다.

벌써 절판되었다는게 아쉽다. 도서관에서 빌려봤지만 책이 좋아서 살려고 했는데.
구할려면 중고도서인가...

p.312
"맞는 말이다. 남성이 치유되면 여성에게 이득이 있다. 그러려면 여성들이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자임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겠지만. 그뿐 아니라 (인정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가부장제도에서 여성들이 공동결정자였음을 인정해야 될 것이다. 때로 우리가 남성들이 그 역할을 맡아 지속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는, 제도를 만든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말이다. 또 나쁘게 보면 진짜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예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폴의 관점으로 보면, 남녀 모두 '제도가 나쁘다'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

p. 313
"...남성들이 백악관 잔디밭에 모여 공개서상에서 울 권리나 잃어버린 아버지의 사랑을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것들은 심리치료를 받아서 해결할 문제들처럼 보인다. 사적인 문제들이므로.
하지만 남성들의 사생활은 우리의 사생활이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폴의 의견이 옳다.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그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가졌다면, 그들의 우울을 치유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또 그들이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 해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고 여전히 후손을 낳는 데 절반의 역할을 한다. 남자가 없으면 우리는 삶이나 변화는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듯,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일이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남장을 한 나를 세상이 맞이해준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네드가 만난 남성 친구들도 나처럼 고통을 느꼈다. 내 변장이 허위였던 것처럼, 그들의 겉모습도 허위였다. 그것이 내 모험의 마지막 반전이었다. 내가 남자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내 '가면'이 진짜 같아서가 아니라, 남자 세계가 가면무도회였기 때문이었다. 남성 모임에 가서야 이런 가면들이 벗겨지고 점검되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나만 변장한 게 아니라, 거기 모인 모든 남자가 변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2015년 3월 2일 월요일

나가토 유키쨩의 소실

2차창작이 다 그런면이 있겠지만 이 작품의 재미는 원작의 네타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의 세계는 원작 4권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에서 나가토가 개변한 하루히가 없는 세계...... 를 닮은 평행세계이다.
그래, 맞다. 원작소설이랑 1mm도 관계없다. 아니 뭐, 엔딩 근처까지 가다보면 원작 세계와 이 세계의 관련성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최신 단행본인 7권 시점까지는 전혀 연관성을 안 던져준다.

이 작품의 나가토는 원작 나가토나 소실 나가토하고는 외모 말고는 닮은점이 없는 천연 도짓코 캐릭터이다. 쿈은 뭐 원작이랑 별로 다르지 않은 츳코미 캐릭터이고... 고백은 안했지만 둘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상태이고 이챠이챠하는 걸 주위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작품의 주된 스토리이다.

스토리 자체는 솔직히 심심한 편이고, 원작 하루히 시리즈라는 껍데기가 없었다면 그렇게 인기가 있을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아니 어쩌면 요즘 러브코미디 만화 중에도 이런 내용이 많은 것 같으니 어느 정도는 반응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만. 애니화는......

근데 그러면서도 스토리상 또 많은 부분에서 원작 네타를 갖다쓰고 있단 말이지. 그것도 주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게.

진짜 개뜬금없이 등장한 이중인격 나가토는 그렇다고 쳐도, 쿈과 하루히의 과거 만남이나 쿈과 사사키의 과거 이야기라던가. 이중인격 나가토는 그렇다치더라도 하루히, 사사키 이야기는 결국 현재 쿈 쟁탈전에 끼어들어서 수라장을 펼칠 것도 아니었으면서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쿈-나가토 러브라인밖에 없으면서 쿈은 실은 하렘계열이었다는 설정이 왜 필요한거지...??

'나가토 유키쨩의 소실'은 7권 끝에서 드디어 나가토가 고백했고, 시점이 크리스마스이고 내년이면 미쿠루와 츠루냥이 졸업하게 되니 곧 끝나겠군. 8권이나 9권 쯤에 끝나려나.

원작과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설명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지금까지 별 복선도 없었으니 안해줄 가능성이 더 높지만...-_-;;







2015년 1월 25일 일요일

외딴섬 악마

왜 내가 봤던 저 시절 일본 추리소설들은 다들 작중 분위기가 '기괴함'이 짙게 느껴지는 걸까... 
이 작품 말고도 흑사관 살인사건이나 도구라 마구라라던가... 아니 어쩌면 이런 작품들은 소수이고 실제로는 평범한 추리소설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케치 코고로가 주연으로 나오는 다른 작품들도 그랬던 것 같고. 
하지만 저런 기괴한 분위기의 추리소설들은 일본 꺼 아니면 못본 것 같다. 기이한 인습이라던가 흑마술이라던가 기괴한 작중인물들의 심리상태라던가...

탐정이 [두 명 등장하고, 처음 나온 탐정이 작품 중간에 죽어버리고 다음 탐정이 나와서 진상을 파헤치는 구조는 특이해서 좋았다. 날개달린 어둠에서 비슷한 구조를 봤을 때도 색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옛날 작품부터 쓰였던 구성이었을 줄이야...]

추리와 모험물이 섞인 구조는 홈즈 초기작에서도 본 것 같다. 주홍색 연구나 네 개의 서명이나... 그러고보니 흑막이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것도 공통점이 있는 듯. 모르몬교나 인도의 풍습이나 원주민이나... 지금은 안 그렇지만 당시 영국 독자들도 홈즈같은 작품에서 이런 기괴한 느낌을... 받았으려나? 하긴 살인같은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서 기괴함이나 공포같은 감정은 전혀 없이 퍼즐풀이같은 감각만 존재하는 것도 좀... 그럴지도. 코난이라던가 코난이라던가 그런 점에서 김전일은 그래도 좀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