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0일 월요일

검열에 관한 검은 책

(읽는 도중임)

*

검열이라고 하면 보통 나라가 시민들에게,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검열을 떠올리지만 오늘날의 검열은 위에서뿐만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각종 단체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의 검열이 사전검열이라면 민간의 검열은 명예훼손, 출간금지를 비롯한 각종 소송이다. 형사에서 민사로 넘어온 셈이다.
검열 반대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면 검열하는 쪽은 명예훼손과 사생활의 보장 등을 내세운다.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캐리커쳐는 표현의 자유로 존중받아야 하나 문화상대주의로 검열받아야 하나? 캐리커쳐가 실린 곳은 이슬람 국가가 아닌데? 캐리커쳐를 실은 신문은 기독교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이슬람의 10배는 하는 곳인데?
정치적 정당함도 검열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정치적 정당함의 개념도 변해서 어느 것이 정치적으로 저당하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기도 힘들어졌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인이나 동성애자를 조롱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정당했지만, 비키니를 입은 여자 행세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데 오늘날에는 정반대가 되었다.
한국의 예를 들면, '일베'를 허용할 수 있는가? 일베는 검열당해야 하나? 5.18은 북한군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주장은 검열받아야 하나? 그렇다면 환단고기를 필두로 하는 일명 환빠의 주장은? 사극은? 픽션이란 이름표로 검열을 피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나라에서 하는 것만이 검열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이윽고 내가 나에게도 검열을 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검열이란 정부 기관이나 영진위, 기윤실, 유림 따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검열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며, 자기 검열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검열이다. 글쓰는 사람이 조건반사처럼 글을 쓰면서, 심지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조차 스스로의 글과 생각을 제한해야 한다면, 거기엔 실질적인 검열이 없더라도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불평은 있지만 검열 때문에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오웰의 『1984』보다 불평 자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더 끔찍한 세계다."

-2014.01.20

*


댓글 없음:

댓글 쓰기